오늘날 우리는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 끼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삼국시대 사람들도 과연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었을까요? 고대 한국인의 식사 횟수와 그 속에 담긴 생활상을 살펴보며, 음식 문화와 일상 생활의 연결고리를 탐구합니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몇 끼를 먹었을까?
우리가 익숙한 ‘하루 세 끼’ 문화는 사실 오래된 전통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이전만 해도 한국인의 일상은 ‘두 끼’ 중심이었고, 삼국시대 역시 하루 세 번의 식사가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삼국시대 기록을 보면, 왕과 귀족 같은 상류층은 하루 여러 차례 음식을 접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아침과 저녁 두 끼를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이는 농업 중심 사회라는 생활 구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 농사일이나 노동에 나섰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거나 거르기도 했고, 본격적인 식사는 해가 진 뒤 저녁에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삼국시대의 식사 횟수는 신분, 계절, 노동 강도에 따라 달라졌으며, 오늘날의 세 끼 문화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1. 농업 중심 사회와 두 끼 문화

삼국시대는 본격적으로 농업이 생활의 중심이 된 시기였습니다. 농업은 해가 뜨면 시작해 해가 질 때 끝나는 구조였기 때문에 식사 패턴 역시 자연의 흐름에 맞춰졌습니다.
아침은 간단히, 혹은 생략
농사일을 나가기 전에는 곡식죽이나 단순한 곡물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흉년이나 곡식이 부족할 때는 아침을 생략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본격적인 식사는 저녁
하루 종일 노동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은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식사였고, 곡식과 채소, 때로는 고기나 생선이 곁들여졌습니다.
점심 개념은 희미했다
농사일 중간에 간단히 보리떡이나 곡물 음식을 나눠 먹는 정도였지, 오늘날처럼 ‘점심’이라는 정식 끼니로 자리 잡지는 않았습니다.
즉, 삼국시대 서민들의 식사는 아침은 간단히 저녁은 푸짐하게 라는 구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신분과 계층에 따른 식사 차이
삼국시대에는 신분과 계층이 뚜렷했기 때문에, 식사 횟수와 내용 또한 크게 달랐습니다.
왕과 귀족층
왕과 귀족은 풍족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하루 세 끼 이상을 먹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잔치나 연회가 많았고, 의례에 따라 여러 차례 음식을 올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를 넘어 권력과 위세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평민과 농민
대다수 평민들은 두 끼 위주의 생활을 했습니다. 특히 수확이 적은 시기에는 한 끼로 버티는 경우도 있었고, 곡식 대신 산나물이나 저장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노비나 하층민
이들은 주로 주인이 제공하는 식량에 의존했기 때문에 끼니 횟수가 더 제한적이었습니다. 하루 한 끼 제대로 먹는 것도 어려웠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삼국시대의 식사 횟수는 단순히 ‘세 끼냐, 두 끼냐’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별 생활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3. 삼국시대 식사 문화에서 본 생활상
삼국시대의 식사 횟수를 살펴보면 단순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 중심의 저녁 식사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함께하는 저녁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한국인의 식사 문화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맞춘 생활 리듬
농업 사회였던 삼국시대에는 인공적인 시간표보다 해와 계절에 맞춘 삶이 우선이었습니다. 따라서 식사 역시 ‘정해진 세 끼’가 아니라, 해가 뜨고 지는 리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음식의 사회적 의미
귀족의 식사는 권력 과시의 수단이었고, 평민의 식사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였습니다. 즉, 같은 시대를 살아도 신분에 따라 ‘먹는 횟수와 질’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하루 세 끼를 먹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서민들은 아침과 저녁 두 끼 중심의 생활을 했고, 귀족이나 왕실만이 여러 차례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는 농업 사회의 구조와 신분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결국 삼국시대의 식사 횟수는 단순히 끼니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간 농업 사회의 리듬, 계층별 생활 수준, 공동체 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 끼 문화는 사실 근대 이후에 자리 잡은 습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인의 식사 횟수를 들여다보면, 밥 한 끼에도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